[미술사] 더욱 빛나는 이지러진 진주 바로크 미술 (2)
본문 바로가기

미술사 이야기

[미술사] 더욱 빛나는 이지러진 진주 바로크 미술 (2)

네덜란드의 융성

네덜란드 지방은 다른 나라보다 일찍이 로마 교황과의 관계를 끊었고 그 일부가 16세기 중엽까지 에스파냐의 식민 통치를 받다가 네덜란드는 1581년에 독립하였다. 그 후 가톨릭을 중심으로 하는 플랑드르 지역, 현재 벨기에에 해당하는 나라와 손을 잡았다. 이탈리아의 화풍을 이어가는 한편으로 북쪽의 독일의 화풍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고유한 전통을 길러내어 마침내는 전 유럽의 미술 선진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플랑드르파

17세기 플랑드르 지역에서 한창 번성하던 미술의 중심 화가는 루벤스(P.P Rubens: 1577~1640)였다. 그는 플랑드르 총독의 총애를 받아 궁중 화가로 활약하였다. 종교화, 신화화, 초상, 역사, 풍속, 풍경 등 다양한 화제를 통해서 밝고 풍만한 육체, 풍부한 색채, 장대한 구도로 생동하는 현실성을 그려 바로크 특유의 양식을 완성시킨 유럽 사회의 최대 화가이다. 한편 이의 뒤를 이은 화가로 반 다이크(Van Dyck: 1599~1641)가 있는데, 그는 스승 루벤스와 달리 부드러운 형태와 섬세하고 청아한 종교화와 초상화를 그렸다. 특히 초상화에 뛰어나서 후일 영국 궁중 화가로 활약하여 영국 화단에 새로운 계시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 로코코 시대로 이어지는 일면을 암시하기도 하였다.

그밖에 루벤스의 흐름을 이어받아 동물화를 잘 그린 스니더르스(Frans Snyders : 1579~1677), 신화, 종교, 풍속화를 잘 그린 요르단스(Jacob Jordaens : 1593~1678), 풍속화가로 명성을 얻은 브루우와(Adriaen Brouwer: 1605~1638), 테니이르스(David Teniers the Younger : 1610~1690) 등을 꼽을 수 있다.

 

성당 제단화와 관람객들
<십자가를 세움 The Elevation of the Cross> 루벤스 1610년, 안트베르펜 성마리아 성당

 

홀란드(Holland)파

16세기 네덜란드는 종교 분쟁의 여파로 남북 두 조각으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이는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쪽의 플랑드르 미술이 이탈리아에 가깝다면 북쪽의 네덜란드(홀란드)는 그들 나름의 자유로운 형식과 채색으로 홀란드 고유의 화풍을 마련하여 근대 미술의 새로운 터전을 닦았다. 즉 일상생활의 정경이나 풍경을 밝은 빛깔과 특유의 기법으로 사회의 이면과 자연의 풍치를 사실적 수법으로 그렸는데, 이 시대를 이끌어낸 화가는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0(확인 요)~1666)였다. 그는 폭넓은 터치와 흙빛, 푸른빛, 누른 빛 등 별스러운 색조로 현대 감각에 결부된 유머 어린 따뜻한 감정의 인물 표정을 잘 그렸는데, 그의 화풍은 렘브란트, 벨라스케스에게 자극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인상주의에도 영향을 주었다.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는 할스의 강렬한 명암 표현에 깊은 영향을 받은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로 할스의 장점을 한층 발전시켜 독특한 명암 묘사와 화면의 통일성, 깊은 정신미를 표현하는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종교화, 신화화, 초상화, 풍속화, 풍경화 등 화제의 폭이 넓었으며 에칭(동판화)의 대가이기도 했다. 특히 <톨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년)> <야경(1642)>은 군상 초상의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었으나 일반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고독한 만년을 보내기도 했다. 이 중 이름난 화가로 오스타데(Ostade: 1610~1685), 메츠(Metsu: 1629~1667), 스텐(Steen: 1626~1679) 페르메이르(Vermeer: 1632~1675) 등이 있는데 그중 페르메이르는 부드러운 명암과 색조로 일상생활의 정경을 시정 어린 조화로 그렸다. 이 밖에 이 시대 말엽의 화가로 현대 회화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한이는 루이스달(Ruysdael: 1628~1682), 홉베마(Hobbema: 1638~1709)와 동물을 잘 그린 퀴이프(Cuyp: 1620~1691), 포터(Potter: 1625~1654) 등이 있다. 루이스달은 하늘, 구름 등을 멋지게 그린 풍경화가였으며, 홉베마는 마을 풍경, 길 등을 조금도 꿈임이 없는 맑은 감정으로 아름답게 그렸다.

 

해부학 강의를 듣는 17세기 남자들
<톨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렌브란트, 1632년,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에스파냐 미술

17세기 초 에스파냐 왕국은 그 이전의 회교적 문화에서 벗어나 15세기에 이르러 기독교의 나라로 독립하면서, 세계 각처에 식민지를 거느린 강대한 해양국으로 성장하였다. 국력의 성장과 함께 일반 국민의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미술도 크게 발전하였는데, 특히 교회와 궁중의 보호 아래 이 시대 유럽 화단의 중추를 이루었다. 이 새로운 화단에 등장한 화가는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3)였는데, 그는 그리스의 크레타 섬 태생으로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배우고 1575년 에스파냐로 건너가 그곳 화단을 개척한 최초의 화가이기도 하다. 바로크의 선구자로서 그가 그린 인물은 얼굴과 체구가 길쭉하고 검푸른 음울한 빛과 진홍색과의 대조, 어딘지 모르게 초현실적 운율의 세계를 전개시키고 있어 그의 예술은 현대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의 후반에 그린 <올가스 백작의 매장>,  <성모 승천> 등 일련의 종교화에서 이러한 그의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 시대에 이름난 화가로 리베라(Ribera: 1588~1652)를 꼽을 수 있는데, 그레코와 더불어 17세기 에스파냐 화단의 성립에 큰 구실을 하였다. 그는 에스파냐 출신이면서 그레코와 반대로 생애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지냈으며, 강한 명암 대비, 철저한 사실로 종교화를 주로 그렸는데, 동판화(에칭)에서도 일각을 나타냈다.

이 시대의 중반에 들어서 에스파니아를 대표하는 화가로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 1599~1660)와 주루바란(Francisco de Zurbarán : 1598~1644), 무리요(Murillo: 1617~1682)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벨라스케스는 에스파냐 바로크 시대의 1인자이며일인자이며, 24세에 이미 궁중화가로 활약하면서 역사화, 초상화, 풍속화 등 주제의 다양함과 장대한 구도, 정확한 성격 묘사는 이후 화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흑회색조의 우아하고 가라앉은 미묘한 조화의 아름다움은 그의 특색이다. 주루바란은 단색 위주의 흑회색조에 의한 종교적 주제가 많은데, 그 나름의 독특한 엄숙감, 신비감, 청정감을 느끼게 하는 독자적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무리요는 17세기 말엽 에스파냐를 장식한 화가로 그의 그림은 황색조의 따뜻함과 온아하고 자애로운 분위기의 종교화와 풍속화를 주로 그리면서도 어디까지나 에스파냐의 정서와 감정을 잃지 않았다.

 

 

파란 드레스를 입은 어린 왕녀
<푸른 드레스를 입은 마그리타 테레사 Margarita-Teresa> 벨라스케스 1659년, 빈 미술사박물관 ( Kunsthistorisches Museum)

 

프랑스미술

17세기 바로크 취미는 프랑스에 크게 유행되면서 루이 14세 시대에 궁중 미술이 대성황을 이루었다. 즉 루이 14세가 세운 베르사유 궁전은 이의 좋은 예로서 전유럽의 왕궁의 표준이 되었다. 1664년에 기공하여 망사르 (J.H. Mansart: 1646~1706)가 완성한 바로크 취향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한편 17세기 회화에 있어서는 초기에는 이탈리아식 모방이 크게 작용했으나, 카로로(Callot: 1592~1635)와 중엽의 푸생 (N. Poussin: 1594~1665) 등의 출현으로 이 시대의 회화를 주름잡았다. 특히 푸생은 고전적인 장엄한 형식과 공상적인 내용으로 풍경과 신화화를 즐겼다.

이 밖에 바로크 취미의 궁전 미술로 바뀌면서 장식, 공예 미술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먼저 왕궁의 장식에 나타났는데, 베르사유 궁전 내부의 화려한 곡선 무늬와 의장은 이 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목조, 공예, 태피스트리, 자수, 도자기, 가구 등 그 범위가 대단히 넓다.

 

 

 

[사진 자료 출처]

모두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