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루스칸(Etruscan) 미술
초기 로마 미술은 그리스보다 에트루스칸 미술에서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이탈리아 중서부 해안 토스카나 지방에는 B.C. 1000년 이전에 동방 민족이 지중해를 거쳐 정착했다. 그들은 점차 세력을 넓혀 여러 도시를 세웠고 에트루리아(Etruria) 왕국을 세워 전 이탈리아를 지배하기도 했다. 그러다 B.C. 4세기 말경부터 로마인에 의해 쇠퇴하기 시작하다 흡수되었다.
에트루스칸 미술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에 걸친 시기에는 소아시아의 고유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가 B.C. 5세기 이후부터 그리스와 왕래가 잦아지면서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독자적인 건축술과 회화, 공예가 발달하였는데, 돔과 아치를 처음으로 건축에 도입하였는데, 이 건축술은 로마로 계승되어 로마 건축의 바탕을 이루었다. 일종의 귀족 정치 체제로 농경과 무역이 발달하였으며 뛰어난 전사이기도 했다. 낙천적이고 향락적인 경향이 있어 금속 공예와 테라코타 조각이 성행하였다.
에트루리아인은 조상을 숭배하는 문화가 있어 실제 가옥과 비슷한 묘를 만들고 벽면에 생활의 정경을 그렸다. 또 석관 위에는 등신대의 테라코타 부조상을 만드는 등 힘차면서도 투박한 독자적인 성향을 이루었다. 에트루리아인의 미술은 특히 조각에서 고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다. 밝고 장식적인 색채와 대담한 기법으로 그들의 성향을 알 수 있다. 또 주조 기술이 뛰어나서 로마 건국과 관련이 있는 늑대나 키메라(Chimaira) 같은 청동 조상을 제작하였는데, 대단한 걸작품으로 자연주의적 표현과 털을 장식적으로 처리하는 등 소아시아의 전통도 반영되었다. 금속 공예 기술이 뛰어나 풍부한 귀금속을 장신구에 사용하였다.
이러한 에트루리아인의 예술은 그리스 예술과 함께 로마의 원천을 이루었으며 B.C. 3세기 로마에 의해 멸망한 후에도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로마의 미술
그리스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된 후 그리스 문화는 동유럽,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각지로 퍼졌으며 특히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로마에 의해 멸망한 후에는 로마는 유럽부터 아프리카, 소아시아의 지배자가 되어 그리스 본토는 로마의 속령이 되었다. 카르타고와 3차에 걸친 포에니(Poeni) 전쟁(B.C. 264~146년)의 승리를 계기로 로마의 시대를 열었다. 로마 민족은 B.C. 8세기경 로마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소왕국이었는데, 점차 세력을 키우다 B.C. 3세기에 에트루리아를 정복한 후 급격히 강대해져 B.C. 1세기에서 A.D. 2세기에 걸쳐 방대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로마는 그리스 미술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에트루리아의 유산을 받아들였다. 로마 미술에서도 특히 뛰어난 것은 건축과 초상 조각으로, 에트루리아의 아치 건축 기술을 그리스 신전 건축에 결합하여, 판테온을 시작으로 극장, 경기장, 욕장, 수도교, 개선문 등 주로 큰 규모의 건축을 발전시켰다. 또 로마인은 궁전과 저택을 그리스에서 운반해 온 조각 작품으로 장식하였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초상 조각도 그리스 조각가들이 만든 것으로 로마인은 예술을 사랑하였지만, 직접 제작하는 것을 천하게 여겨 노예나 외국인이 담당했다고 한다.
■ 건축
로마는 에트루리아인의 토착 문화를 바탕으로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미술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전보다는 실용적인 바실리카(Basilica), 경기장, 욕장, 극장, 개선문 등을 세웠는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양식이었다. 판테온(Pantheon)을 살펴보면 그리스식 삼각형의 장식을 도입하고 지붕은 에트루리아인의 돔의 형태이다. 특히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63~ A.D.14년) 대제는 로마를 꾸미는 데 힘을 기울였고, 마르셀루스 극장, 팔라티노 신전, 판테온(현재의 판테온은 하드리아누스(Hadrianus: 76~138년)가 재건한 것이다.)을 연달아 세웠다. 이후에도 역대 황제들은 대규모의 건축물을 세웠으며, 그중에서도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9~987년)의 콜로세움(Colosseum)이 매우 유명하다. 원형 극장은 티투스(Titus: 39~81년)이 완성하였으며, 욕장과 개선문을 세웠다. 개선문은 평평한 지붕을 떠받치는 코린트 양식의 기둥을 세우고 아치형 문의 양면에 전승 기록을 부조로 새겨 넣었다..
아치와 둥근 지붕의 천장은 벽돌을 사용하였으며, 콘크리트를 개발하여 대규모의 건축이 가능했다. 상하수도의 토목공사와 함께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시대의 건축물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바실리카(Basilica)
고대 건축양식으로서의 바실리카는 고대 그리스어로 ‘왕족의(basilikos)’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재판소, 상업 거래소를 겸한 장방형의 공공 회당을 가리킨다. 좁은 한쪽 면을 입구로 두고 맞은편에는 법관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내부에는 2열로 기둥을 세워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누었다. 중앙은 네이브(nave), 양측을 아일(aisle)이라 부른다. 네이브의 천장은 아일보다 높게 만들었으며 대개의 경우 법관이 있는 벽을 반원형으로 만들었는데,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성당의 건축양식으로 변화 발전하였다. 현재는 로마 가톨릭 교회나 그리스 정교회에서 중요성을 고려하여 특정 교회에 부여하는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공중욕장(Thermae)
카라칼라(Caracalla) 욕장이 대표적이다. 206년에 기공하여 217년에 완성하였으며 6세기까지 욕장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시민의 휴식과 오락을 겸한 체육장, 관람석, 정원, 도서실 등이 부설되었다.
극장(Theatrum)
그리스는 보통 자연적 경사의 사면을 활용하여 극장의 계단석을 만들었는데, 로마는 탁월한 구조 기술을 사용하여 평지에 구축하였다. 특히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unus)가 기공하여 아들 티투스가 80년에 완성한 콜로세움이 이러한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개선문(Triumphal arch)
주로 황제의 전쟁에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아우구스투스의 개선문이 리미니(Rimini)와 수사(Susa)에 있고, 티투스의 개선문과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이 유명하다. 장방형평면 구조를 활용하여 아치 통로를 두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기타 다양한 탑, 왕궁, 주택의 조경, 도로, 교량, 수도 등의 토목 공사는 유럽 건축의 밑바탕이 되었다.
■ 조각
아우구스투스 시대부터 궁전과 저택을 그리스 조각으로 꾸미는 경향이 유행하였다. 그리스에서 운반해 온 조각에는 목가적인 형태가 많았으며 모조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남아있는 그리스 조각들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모조품이 많다. 초상 조각도 많이 제작하였는데, 그리스처럼 인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모델이 가진 성격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더해졌다. 시저(Caesar), 안토니우스, 아그리파, 아우구스투스가 유명하다. 또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청동 기마상과 부조도 발달하여 궁전, 개선문, 기념탑 등을 장식하였다.
■ 회화
로마 7세기 역사 중에서 회화 작품은 B.C. 2~ A.D. 2세기의 작품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주로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A.D. 79년 베수비오(Vesuvio) 화산의 폭발로 폼페이(Pompeii)와 인근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등지가 용암과 잿더미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다가 18세기 이후 발굴되었다. 이 지역은 로마 시대의 고위 관직자나 부유한 상인의 별장이 모여있던 곳으로 당시 로마인의 생활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재료이다. 회화 면에서는 헬레니즘의 영향이 많이 보이며 그리스 말기 작품을 묘사한 것도 있다.
회화 양식은 벽화(Fresco), 모자이크, 납화(蠟畵: 안료를 벌꿀에 녹여 그리는 수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헬레니즘의 전통을 계승한 것부터 원시적 인상을 자유롭게 표현한 것도 있다. 그림의 소재도 점점 세속화하였는데, 특히 <디오니소스의 비밀 의식> 등에서도 민간에 전해지던 이야기와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그리스 미술에서 계승된 고전적 성격과 로마인다운 풍부함을 드러내고 있다.
■ 공예
회화와 마찬가지로 헬레니즘 시대의 공예가 로마에서도 유행했다. 건물 바닥을 모자이크로 장식하였으며, 염직, 보석 장신구, 유리 공예, 금속 공예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서판(Diptycha)은(Diptycha) 두 개의 판형 상아에 경첩을 달아 맞접을 수 있게 만든 후, 겉면에는 부조를 더하고 안쪽에는 글을 썼다. 처음에는 목판을 사용하다가 귀족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사치스럽게 변하여 고급스러운 재료로 변했다. 염직물로는 회화적이고 장식적인 무늬를 직조한 테피스트리(Tapestry)로 벽 장식이나 의자의 커버 등으로 사용하였다. 이 밖에도 장식 유리그릇이나 청동과 금, 은으로 만든 의자, 촛대, 침대 등 일상용품이 있다.

체르베트리의 지하 묘지에서 발견된 작품으로 에트루리아 조각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 한쌍이 누워있는 조소 작품으로 탈키니아 벽화에서도 볼 수 있는 연회용 의자를 본떠서 만든 후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두 부부의 표정이나 비례 감각도 무척 세련되었으며 거의 등신대 크기로 규모로 보나 기술로 보나 대단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오니아 조각의 영향도 느껴지면서 에트루리아인의 독특한 양감 표현을 느낄 수 있다.

군신 마르스와 미의 여신 비너스, 이들을 지켜보는 사랑의 신 에로스를 그린 그림이다. 로마의 초기회화는 헬레니즘과 에트루스칸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의 원근법과 프레스코 기법, 모자이크, 템페라 기법을 이어받았다.
A.D.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잿더미가 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폐허예서 발굴된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 등에서 로마 초기시대의 회화를 엿볼 수 있다.
폼페이는 당시 부유한 사람들이 별장으로 쓰던 곳이었던 만큼 향락의 나날을 연상할 수 있는 관능적인 장면을 그린 그림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대로마 제국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전신상으로 화려한 갑옷을 입고 손을 들고 지휘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프리마 포르타에서 발견된 이 조각상을 비롯하여 아우구스투스 치세하에 로마 조각은 새로운 경향을 드러낸다. 얼핏 보아 인간을 조각한 것인지 신을 조각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양쪽 모두를 표현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을 이상화한 모습을 통해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한 것이다.
[사진 자료 출처]
*1 Par Shonagon — Shonagon, CC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42544067
*2 By WolfgangRieger - Marisa Ranieri Panetta (ed.): Pompeji. Geschichte, Kunst und Leben in der versunkenen Stadt. Belser, Stuttgart 2005, ISBN 3-7630-2266-X, p. 203,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216764
*3 By Justin Benttinen - 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6471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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