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3천년간 나일강에 이어진 이집트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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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이야기

[미술사] 3천년간 나일강에 이어진 이집트 미술

이집트 미술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은 나일강,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등 농경에 적합한 환경에서 발생하였다. 원시의 채집과 수렵에서 생산 경제로, 유목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주술 신상에서 유기적 신화를 갖춘 체계적 신앙으로, 씨족 중심 집단생활에서 도시 국가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거대한 집단 의지가 나타났고 질서를 갖춘 사회로서 역사 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중에서도 최고의 문명을 꽃피운 고대 이집트는 왕이 모든 생활의 지배자로서 신과 같이 숭배되었고 절대적 권력을 누렸으며 고유한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이나 묘를 만들었다.

 

일찍이 이집트 지방은 많은 군소 국가가 군림하고 있었으나 B.C. 3200년경부터 통일된 국가로서 번영하였다. 보통 B.C. 3000년부터 2800년경을 초기 왕조 시대, B.C. 2800년부터 2200년경을 고왕조 시대, B.C.1600년부터 1000년경을 신왕조시대, B.C.1000년부터 330년경을 말기 왕조 시대로 크게 구분하며 왕조의 수에 의해 나누어지고 있다. 특히 제3~10 고왕조 시대에 문명이 가장 발달하였고 제4왕조에서 제6왕조와 신왕조의 제18, 19 왕조에 뛰어난 미술과 고도화된 문명 생활을 누렸다. 고왕조 시대에 이미 조형 이념에 부합한 정사각 추의 단순하며 웅장한 피라미드와 정면성의 법칙(Principle of Frontality)에 따른 영원한 사후 세계를 추구하는 조각들이 발달하였다. 정면성의 법칙이란, 인체를 묘사할 때 가장 특징적인 모습을 취합하여 하나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고대 이집트 미술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얼굴은 옆모습, , 어깨, 몸통은 정면, 팔과 다리는 측면을 향하는 등 본질을 드러내고 규범과 질서를 강조한다는 의미가 있다.

 

나일강의 계곡과 방대한 사막이 결부되어 푸른 하늘로 이어지는 자연의 위대함과 왕권의 강대함, 사후 세계를 꿈꾸는 신앙을 형성하였다. 특히 이집트인은 사후 세계에서도 영혼이 육체에 결부되어 영원히 산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를 마련하는 거대한 피라미드와 미라를 대신하는 시종들의 조각을 만들었고 죽은 자의 지난날을 기록하는 벽화를 그렸다. 이들의 표현은 지극히 양식화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우수한 창조성은 이미 고왕조 시대에 완성되어 있었다. 특히 제4왕조와 제5왕조 시대의 유물은 이집트 3000년의 역사를 대표하는 웅장하고 감동적이다. 그 이후는 이미 확립된 유형의 테두리 안에서 기교를 답습하고 반복하는 형태이다. 신왕조 시대에 제작된 <공물을 나르는 여인상>을 살펴보면 고왕조 시대의 조각과 비교해 봤을 때 섬세하고 화려하며 인체의 비례가 길어졌음을 알 수 있다. <카프라(Khafra) >, <라흐테프와 노페르트>, <촌장의 상> 등은 떡 벌어진 어깨와 두툼한 가슴, 당당한 자세 등은 대조적이다.

 

유형적인 면에서 본다면 제18왕조 이크나톤(Ikhnaton) 시대에 큰 변화가 있었다. 종교 개혁에 따른 취향의 변화로 볼 수 있는데, 제국주의 왕권을 과시하는 대규모의 건축과 거대한 동상이 건조되었으며 아시아 여러 나라의 호사로운 취미도 반영되었다. 이크나톤왕은 테베 지방의 신인 아몬의 숭배를 배척하고 아톤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종교를 펼쳤다. 모든 미술 활동의 근원이 종교인만큼 이러한 종교 개혁은 커다란 변화를 가져와서 아마르나(Amarna) 미술로 구분된다. 이러한 종교의 변화는 일대에 그치고 이후는 다시 아몬 신앙으로 되돌아갔으나 아마르나 미술은 그 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베를린에 있는 <네페르티티(Nefertiti) 왕비 흉상>은 이 개혁기의 양식을 반영하였다. 커다란 눈썹과 높고 시원한 콧날, 꼭 다문 입 등이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며 흉상이라는 형식도 이집트 미술로서는 희귀한 작품이다.

 

이집트 미술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집트 미술을 대표하는 피라미드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대단한 규모에 있다. 거대한 신상에서 표현되는 인물은 움직임이 적고 하나의 형식에 맞춰 정지한 자세이다. 예배의 대상으로서 기념비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양식은 장식이나 애완용 작은 조각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민족양식으로 오랫동안 계승되었다. 3000년간 번영했던 이집트는 B.C. 332년에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에게 정복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 왕조의 지배를 받다 B.C. 30년에 로마에 의해 멸망하었다.


걷는 남자 조각
< 넨케페트카 조각상 > Statue of Nenkhefetka  제 5 왕조 ,  런던 대영박물관 (*1)

 

넨케페트카는 파이윰(Fayum) 오아시스 바로 남쪽에 위치한 지방 도시를 다스렸다. 이 조각상은 그의 마스타바 무덤에서 발견된 12점의 조각상 중 하나로, 그의 아내와 아들의 조각상도 함께 묻혀 있었다. 내부에 공간이 있는 밀실 형태의 특별한 방 세르답(serdab)에 안치된 이 조각상들은 그들의 영혼을 위한 또 다른 육체로 여겨진다.

 

넨케페트카는 제5왕조 시대의 특징인 짧고 무거운 가발과 흰색 깃, 반쯤 주름 잡힌 흰색 치마를 입고 손수건을 들고 있다. 서 있는 자세는 남성 조각상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여성 조각상은 보통 발을 모으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집트의 걷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은 일반적으로 왼발을 앞으로 내딛는 자세를 취한다. 따라서 두 다리가 모두 보이는 오른쪽 측면에서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왼쪽 측면에서는 앞으로 내딛는 다리만 보이고, 다른 다리는 안정성을 위해 다리를 연결하는 여분의 돌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을 향한 측면 모습이 선호된 이유는 상형문자의 기호가 오른쪽을 향하는 것을 선호하는 방향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예술적 이미지와 상형문자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함께 발전했다. 두 매체 모두 현실을 조작하는 마법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졌다.

 

남녀 조각 좌상
< 라호텝 왕자와 노프렛 왕자비 > rahotep and nofret,  고왕국 제 4 왕조  B.C. 2600 년경 ,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2)

 

 

라호텝은 헬리오폴리스의 대신관이자 대장군으로 제4왕조 시대의 사람으로 추정한다. 라호텝 상은 마치 공양을 바치는 자손들에게 답하는 듯한 공손한 자세로 앉아있다. 짧게 깎은 검은 머리, 주홍빛을 띈 갈색 피부에 흰색 천을 허리에 두르고 목에 건 부적과 수염은 청색이다. 두 사람의 눈은 모두 옥으로 되어 있는데, 흰자위는 불투명한 석영암에 검은 눈동자는 투명한 수정이다. 눈 가장자리는 검은 동이 있는데, 이집트 사람들이 눈병을 예방하고 화장하는 목적으로 공작석과 방연의 분말을 기름에 개어 눈에 바르던 습관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노프렛 왕자비는 머리를 양 갈래로 깔끔하게 가르고 가발을 썼다. 머리에 쓴 관은 흰색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은으로 주정된다. 고왕국 시대 이집트에는 은이 귀했기 때문에 금보다 비쌌다고 한다. 몸에 붙는 흰색 상의를 입고 있으며 화려한 가슴 장식을 달고 피부는 크림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집트 유물 중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조각상
<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 , The Nefertiti Bust,  신왕국 제 18 왕조  B.C. 1355 년경 ,  베를린 국립 박물관 (*3)

 

1912년 독일 발굴대가 발견한 조상으로 아마르나 왕웅 조각가 투트메스의 아틀리에에서 석고상이나 미완성 작품과 함께 발견되었다. 다른 이집트 작품과 다르게 인물의 특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아르마나 예술 작품 중에서도 잘 보존된 작품이다. 특히 금과 보석으로 된 띠가 달렸을 것으로 추측되는 통 모양의 커다란 모자가 인상적으로 예술가의 대담함과 섬세함이 잘 드러나 있다.

 

 

 

[사진 자료 출처]

*1 직접 촬영

*2 By Djehouty - 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1203600

*3 By Philip Pikart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433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