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에게해에서 헬레니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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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이야기

[미술사] 에게해에서 헬레니즘까지

에게(Aegean) 미술

에게해 연안 여러 섬의 유적 발굴로 이 지역의 그리스 문화의 발상지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와서였다. 에게해는 발칸 반도, 소아시아, 크레타섬에 둘러싸인 해안으로 섬이 많은 다도해이다. 온화한 기후와 바다로 둘러싸여 외적의 침해를 받을 우려가 비교적 적은 지리적 요인으로 개방적이고 세속적인 미술 문화가 발달하였다.

에게 문명은 성립 과정으로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한 남방계 민족으로 B.C. 3000년경에 훌륭한 청동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미노스(Minos) 문화라고 한다. 다음은 그리스 본토로 이주한 북방 민족이 만든 미케네(Mycenae) 문화,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트로이 지방의 트로이(Troy) 문화로 구분되며 서로 다른 성격으로 발달하였다.

가장 먼저 꽃을 피운 것은 미노스 문화였다. 미노스 미술(B.C. 3000~1400년경)이 크게 발달한 시기는 B.C. 2000~1400년경으로 해양 민족으로서 신전보다는 궁전 건축에 힘을 쏟았다. 크노소스 궁전에 장식된 벽화는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였고, 자유분방하고 쾌활하고 개방적인 문화를 반영하였다.

그리스 본토에서는 B.C. 2000년경부터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기질의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B.C. 1400~1200년경에 가장 융성하였다. 미케네를 중심으로 한 왕궁 유적을 살펴보면 미노스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개방성은 감소하고 엄격함을 느낄 수 있다.

트로이 문화는 다른 지역에 비해 섬세함이나 세련미는 부족했으나 북방계 지배층의 문화와 소아시아의 토착 문화가 혼합되어 그리스 본토로 이어지는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었다.

 

그리스 미술

그리스 미술의 여명기 (Archaic)

에게 문화는 그리스 본토에서 그리스 문화의 전신이 되었다. 그리스 본토에는 B.C. 15세기부터 북방의 도리아(Dorian) 민족이 침입하기 시작하여 B.C. 13세기경부터 정착하여 B.C. 9세기 경에는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들은 크레타와 미케네의 궁전을 파괴하는 등 B.C. 11~9세기에는 그리스 미술의 암흑시대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고도로 발달했던 미노스 미술은 소멸하여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의하면 이 시대는 영웅의 시대로 침입자와 선주민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고 일부는 바다를 건너 소아시아로 일부는 이탈리아 남부로 이주하였으며 그리스에는 새로운 정치 형태로 도시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스 문화를 살펴볼 때 세 가지를 가장 큰 요소로 본다. 첫째는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의 영향, 두 번째는 도리아인의 진취적 기질, 세 번째는 아시리아와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미노스와 도리아의 가장 큰 차이는 청동기와 철기였다. 그리스 예술은 공예로 시작되었는데, 디필론(Dipylon) 양식의 도기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 형태와 추상적 표현은 유연성과 사실성이 강한 미노스 양식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한편 이 시대의 조각은 크레타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 크레타와 미케네의 선주민은 소아시아에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그들의 미노스 예술의 특성, 아시리아와 이집트의 영향과 더불어 그리스 본토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 미술의 전성기 (Classic)

그리스 미술의 전성기는 B.C. 5~4세기로 이때 성숙하여 완성된 문화가 후에 유럽 문화 형성의 모체가 되었다. 이집트 혹은 에게해 여러 섬에서 발전된 문화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성장 과정을 살펴봤을 때, B.C. 800년에서 450년을 과도기(Archaic), B.C. 450년에서 330년을 전성기(Classic), B.C. 330에서 30년을 전파기(Hellenistic)로 본다.

그리스 미술의 특색은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문화적 이상은 인간의 완성으로 미술에 드러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는 다른 고대 민족과 다른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실적이고 인간 중심적이다. 이상적인 인간의 형성을 위해 여러 곳에 신전을 건축하였고 체육을 장려하였다. 특히 이러한 성격은 조각에서 찾을 수 있는데,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 소녀상이나 아폴론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누드상들은 그리스인이 얼마나 조화와 균형을 이상으로 삼았는지 알 수 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공예품으로 항아리를 들 수 있다.

과도기의 건축은 많지 않지만, 이집트 건축에서 영향을 받아서 점차 그리스 고유의 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리스 미술은 B.C. 6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에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수차례 승리한 후 아테네를 중심으로 비약적으로 발달하였다. 신을 모시는 신전, 신전을 장식하는 신상, 전승 기념상, 경기에서 우승한 자들에서 이상에 부합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신전은 평면과 입체의 명확한 대조와 아름다운 비례를 이루었다. 신전을 구성하는 원주의 기원은 이집트에서 찾을 수 있다. 초기에는 목재를 쓰다가 기둥 중간이 불룩하게 나온 엔타시스(Entasis)와 주신에 홈을 새긴 장식 플루팅(Fluting)을 가미하여 아름답게 꾸몄다. 초기의 도리아 양식에서 이오니아 양식(Ionic order)을 거쳐 코린트 양식(Corinthian order)으로 변천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구조적 변화가 있었다.

도리아식은 B.C. 400년 초에 일어났으며 수수하고 무게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몸통이 불룩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고 기둥머리는 간소하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이나 아이기나의 <아파이아(Aphaia) 신전>을 예로 볼 수 있다. 이오니아식은 소아시아와 그리스 동북 지역에서 성행했으며, 기둥은 날씬하고 가냘프고 기둥머리가 나사 모양인 것이 특징이다. 파르테논 신전 후면에 있는 <에렉테이온(Erechtheion) 소신전>과 소아시아 에페소스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들 수 있다. 코린트식은 아칸더스(Acanthus) 잎 모양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기둥머리와 장식적인 가는 홈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으로 로마시대에도 즐겨 사용되었다.

뛰어난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9~429)가 수장으로 있던 25년간은 B.C. 479년 마침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여세로 지중해 일대에서 가장 큰 강국이 되었다. 미술 분야에서도 황금기를 맞아 그리스 건축을 대표하는 <파르테논 신전>이 건축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 중앙의 낮은 언덕 아크로폴리스에 위치하며, 아테네 신을 모신 곳이다. 이 신전은 완전한 균형과 비례를 이루고 있는데, 도리아식 원주의 높이와 두께, 삼각형 팀파눔의 형태가 아우러져 최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신전의 앞뒤 8개의 기둥과 양옆으로 17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팀파눔에는 <아테나의 탄생>, <아테나와 포세이돈의 싸움>, <그리스와 아마존의 싸움>, <켄타로스와 라피테스의 싸움> <트로이의 전쟁> 등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모두 최고의 조각가인 피디아스의 작품이다. 다른 대표적인 조각으로는 뮈로(Myron)<원반을 던지는 사람>, 폴리클리투스(Polykleitos)<창을 멘 청년>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미술은 이후 유럽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 미술은 전성기의 후기로 접어들면서 크게 달라진다. 펠로폰네소스(Pelopnnesos: B.C. 431~404) 전쟁에 시달린 그리스 예술가들은 일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슬픔과 괴로움을 즐겨 표현하게 된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으로 프락시텔레스(Praxiteles)<헤르메스 상> <크니도스의 비너스>이 있으며, 스코파스(Skopas)<니오비두스의 군상> 등이 있다. 프락시텔레스는 대리석으로 인물의 감성과 머리카락을 잘 표현하였으며, 스코파스는 신화를 주제로 증오, 비애, 격정 등 정열적인 감정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여 새로운 조각의 경지를 열었다. 한편, 리십포스(Lysippos)는 영웅 또는 투사의 힘찬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특히 대표작 <제우스의 신상>은 아름답다.

 

그리스 미술의 전파기 (Hellenistic)

B.C. 338년 말기에 접어들면,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지배하에 있었는데, 그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 전체의 지배자가 되었고 이어서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의 일부까지 정복하였다. 이로써 나일강에서 인더스강에 이르는 광대한 일대에 걸쳐 헬레니즘(Hellenism) 문명이 펼쳐지게 된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예술 중심지의 지위를 잃고 알렉산드리아, 로도스, 페르가몬(Pergamon) 등으로 옮아간다. 또한, 미술이 왕에게 예속되어 왕과 영웅의 초상을 표현하는 현실주의적 경향으로 흘러간다. 어느 가리아인이 자신의 부인을 죽이는 <자살하는 가리아와 그의 부인> <죽어가는 가리아인> 등이 예시이다. 또 트로이의 사제였던 라오콘이 두 아들과 함께 죽어가는 장면을 표현한 라오콘<Laokoon>은 이 시대의 감정을 실감하게 된다. 이후 이러한 경향은 로마 시대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다.

 

뱀에게 죽임을 당하는 세 사람의 조각
< 라오콘 > B.C. 100 년경 ,  로마 바티칸 미술관 (*1)

 

1506년 그리스 문화에 대한 동경이 고조되었을 때, 로마 에스퀼리노 언덕에 있는 티투스 황제의 궁터 발굴 작업에 미켈란젤로도 참가했다. 라오콘이 발굴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예술의 기적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라오콘과 두 아들의 표정과 동작이 역동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라오콘은 트로이의 사제로서, 목마의 함정을 알아차리고 경고했는데 이에 분노한 포세이돈이 큰 구렁이를 보내어 라오콘과 두 아들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죽는다. 참혹한 이야기지만, 격정적인 표현이나 드라마틱한 상황을 즐겨 소재로 삼던 헬레니즘 말기 문화에 실로 어울린다. 그 장대함과 동적인 표현이 실로 감동적이어서, 발굴 당시 결손 부분을 보수해달라는 작업을 미켈란젤로가 역량 부족을 이유로 거절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사진 자료 출처]

*1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