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티그리스 강와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미술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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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이야기

[미술사] 티그리스 강와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미술 흐름

메소포타미아 미술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평원에서는 이집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문명이 발달하여 여러 종족이 끊임없이 패권을 교체하며 다양한 양상으로 독자적 문화를 형성하였다. 그중에서도 메소포타미아적 조형은 수메르(Sumer)인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우르(Ur) 등지에서 발굴된 유적에서 찾을 수 있다. <에비 일(Ebih-il) > 등을 살펴보면 평화롭고 목가적인 모습으로 현세를 지향하는 세계관으로 이집트와는 완전히 다른 대범함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유연성과 긍정성은 이후 구데아(Gudea) 왕조의 조각에서도 나타난다.

 

B.C. 2200년경 남부의 바빌로니아가 수메르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사실주의가 강조되고 왕권과 신권을 과시하는 장대한 조형을 전개했다. 특히 <함무라비(Hammurabi) 법전비>는 태양신 샤마슈(Shamash)를 중심으로 하는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와 왕권에 결부된 바빌로니아의 사실주의를 볼 수 있는 좋은 예시이다.

 

바빌로니아는 제3왕조까지 이어졌으나 아시리아(Assyria)의 압력과 여러 부족의 침략으로 혼란이 거듭되다가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했다. 본디 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인데, 북부는 험준한 지형에 맞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고 호전적인 기질을 지닌 민족이 살았다. 이들 미술에는 전쟁이나 수렵 등 활동적인 내용이 많으며 초자연적인 동물 표현도 있다. 대표적인 미술로는 <수렵도>, <빈사의 사자> 등이 있으며, 수메르 아카드(Akkad) 미술의 전통을 답습하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메소포타미아 미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 지리적 요인으로 시리아, 소아시아, 에게해 주변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시리아는 B.C. 1500년경부터 약 1000년간 군림하다가 B.C. 612년 멸망하고 신바빌로니아 왕국이 세워졌다. 이들 왕국의 번영은 짧았으며 지금은 베를린 미술관에 있는 <이시타르(Ishtar)의 문>에서 살펴볼 수 있다.

B.C. 530년경 페르시아 민족에 의해 점령되어 페르세폴리스를 수도로 하는 아케메네스(Achaemenes) 왕조가 세워지고 이집트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B.C. 300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되어 그리스의 지배에 들어가면서 그리스 미술로 발전하여 후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숲 속의 산양> Ram in the thicket,  B.C. 2750 년경 ,  런던 대영박물관

 

이라크 남쪽 우르 지방에서 발견된 우르의 왕묘 중 74명의 남녀 순사체가 함께 발견된 죽음의 해자(Death Pit of Ur)에서 발굴되었다. 산양은 뒷다리로 서서 앞다리를 나무의 좌우에 걸치고 있다. 한 그루의 성수를 중간에 두고 두 마리 산양이 맞서는 구성으로 메소포타미아의 많은 미술 작품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주제이며 그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나뭇가지는 금박으로, 산양의 얼굴과 다리는 금으로 눈, , 뿔은 라피스 라즐리이며 다른 부분도 보석과 조개껍데기, 은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른 산양은 필라델피아의 펜실베니아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 우르의 군기  –  전쟁 > Standard of UR  – WAR, PEACE, B.C. 2750 년경 ,  런던 대영박물관

 

< 우르의 군기  –  평화 > Standard of UR  – PEACE, B.C. 2750 년경 ,  런던 대영박물관

 

우르에서 발굴된 작품으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토된 작품 중에서도 걸작이다. 나무로 틀에 모자이크로 전투하는 장면과 연회 장면을 표현하였다. 모자이크에는 조개껍데기, 라피스 라줄리, 적색 석회암 등을 사용하였다. 조개의 광택 있는 흰색과 라피스 라줄리의 짙은 청색, 차분한 석회암이 뚜렷한 대조를 이루어 눈길을 끈다. 조개에는 선을 새기거나 흑색으로 선을 그려 표현하였다.

 

전쟁은 하단부 왼쪽부터 슈메르 군대가 출진하여 갑옷을 갖춰 입은 군인이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사륜 전차에 타고 오른쪽으로 가면서 시체를 넘어 진격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중간부에는 투구를 쓰고 창을 든 보병들이 전진하여 적을 물리치고 있다. 상단부에는 전쟁에 승리한 왕이 한가운데에 있고, 신관, 군인 등이 보인다.

 

평화는 하단부 왼쪽부터 짐을 나르는 사람들과 말을 끄는 사람들이 연회를 준비하러 간다. 중간부에는 소나 양을 끌고가는 이, 물고기를 바치려는 이 등 여러 가지 물품을 바치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상단부에는 왕과 사람들이 술잔을 들고 있으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음식을 나르는 하인이 보인다.

이렇게 간단하나마 수메르 인의 전쟁과 평화와 관련된 서사시를 읽을 수 있다.

 

< 이드리미 왕 조각상 > Statue of King Idrimi of Alalakh, B.C. 1400 년경 ,  런던 대영박물관 (*3)

 

모자를 쓰고 시리아식 의복을 입고 두 마리 사자를 장식한 옥좌에 앉은 모습을 새긴 이드리미 왕 조각상은 백색의 돌에 새긴 후 눈동자에는 검은 돌을 박았다.

전신에 새겨진  쐐기문자 명문(銘文)에는 왕의 전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드리미 왕은 시리아 출신으로 형제 싸움으로 가나안으로 도피했다가 훗날 세력을 갖추게 된다. 알랄라흐(Alalakh) 왕으로서 미탄니(기원전 1550년 ~ 기원전 1260년)왕 파라타르나에게 소왕으로 인정받아 신하로써 섬긴다. 근처의 도성부터 공략하여 세력을 키운 후 시리아의 왕이 되어 30년간 통치했다.

이 조각상은 초기 수메르인 조각의 전통이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어졌음을 증명한다. 수메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말하며 수메르인들이 도시 국가를 건설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다만 이 지역은 이집트의 나일강처럼 폐쇄적인 골짜기 지형이 아니라 개방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어 유목 민족적 기질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소박하고 활기찬 수메르 미술의 특징을 이드리미 왕 조각상에서 엿볼 수 있다.

 

 

 

[사진 자료 출처]

*1 직접 촬영

*2 직접 촬영

*3 직접 촬영